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카트완 전투 (문단 편집) == 배경 == 11세기 말, 중동 전역의 패자였던 [[셀주크 제국]]은 수많은 내전과 분열로 인해 산산조각났다. 각지의 영주들은 이 때를 틈타 독자적인 세력을 일으켜 술탄의 권위에 도전했고, 유럽에서 몰려온 [[십자군]]은 [[예루살렘 왕국]], [[에데사 백국]], [[안티오키아 공국]], [[트리폴리 백국]] 등 여러 [[십자군 국가]]를 건국했다. 셀주크 제국은 이 혼란을 좀처럼 수습하지 못해 조만간 멸망하는 듯 했다. 그러던 1119년 9대 술탄에 오른 [[아흐마드 산자르]]는 무너져가는 제국을 복구하기 위해 사력을 다했다. 그는 변경을 번번이 침공하던 [[가즈니 왕조]]와 [[카라한 칸국]]을 재복속하였고[* 특히 카라한 칸국과의 전쟁에서 카디르 칸 지브라일을 전사시키기도 했다.], 형제들의 반란을 모조리 진압했으며, 독립을 꾀하던 [[압바스 왕조]]의 [[칼리프]]들을 굴복시켰다. 그리고 연공 지불을 제대로 하지 않는 호라즘을 징벌하여 딴 마음을 품지 못하게 만들었다. 이렇듯 그는 20여 년간 전국 각지를 종횡무진하며 여러 전투에서 승리를 거뒀고, 셀주크 제국은 그의 활약 덕분에 부흥하는 듯했다. 한편, [[요나라]]가 망한 뒤 [[금나라]]군의 추격을 피해 서쪽으로 달아난 [[야율대석]]은 툴라 강 상류의 카툰성에 입성한 뒤 인근 7주의 장관들과 18부의 수령들을 소집해 요나라의 부흥을 선포하고 [[서요]]를 건국했다. 이후 주변의 여러 유목민족을 복속시키고, 당시 서부와 동부로 나뉘어진 카라한 왕조를 공격하여 동부 카라한 왕조를 무너뜨리고 발라사군을 새로운 수도로 삼았다. 이에 위협을 느낀 서부 카라한 왕조의 칸 루큰 웃 딘 마흐무트는 1137년 5월 타지키스탄의 후잔트에서 야율대석과 맞붙었으나 크게 패하여 사마르칸트로 도주했다. 이리하여 야율대석은 서부 카라한 왕조의 영역 대부분을 손에 넣었다. 마흐무트는 사마르칸트로 도주한 뒤 산자르에게 구원을 요청했다. 이에 산자르는 1141년 친히 대군을 이끌고 사마르칸트로 이동한 뒤, 서카라한 왕조 내에 거주하던 카를루크 족의 충성심이 의심스럽다는 이유로 대거 추방했다. 카를루크족은 산자르에게 충성을 맹세하며 자기들이 계속 거주하게 해달라고 청했지만, 산자르는 무시했다. 이에 그들은 야율대석에게 향했고, 야율대석은 카를루크 족을 거둬준 뒤 산자르에게 카를루크족에게 자비를 베풀 것을 요청하는 편지를 보냈다. 그러나 산자르는 야율대석에게 이슬람교로 개종하지 않으면 대군으로 응징할 것이라는 내용의 답신을 보냈다. 특히 말미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의 도발성 문구를 덧붙였다. >"나의 군대는 화살로 수염을 자를 수 있다." 야율대석은 편지를 읽은 뒤 셀주크 사신들에게 바늘을 쥐어준 뒤 수염 한 줌을 잘라보라 명했다. 사신들이 그렇게 하지 못하자, 그는 실소를 흘리며 말했다. >"바늘로도 수염을 자르지 못하면서, 화살로 어떻게 하겠단 말인가?" 그 후 야율대석은 군대를 소집해 트란스옥시아나를 침공했고, 산자르는 즉시 응전했다. 이리하여 양측은 사마르칸트 북쪽의 카트완 평원에서 맞붙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